잡다한 이야기/일상 생활 이야기

안면마비(구안와사) 발병과 치료 및 회복 경험

YK Ahn 2023. 12. 1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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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년전 물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시절에 흔히 말하는 구안와사라는 얼굴이 마비되는 병에 걸렸던 적이 있다. 꽤 추웠던 겨울이었다. 토요일 아침에 실험실로 출근 후 오전부터 뭔가 혀에 얼얼한 느낌이 있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점심을 먹은 후 양치질을 할 때 입안에 물을 머금지 못하고 물이 줄줄 흐르는 입을 보면서 얼굴 한쪽에 마비가 온 것 같았다. 부모님께 전화해서 증상을 얘기해보니 구안와사가 의심되어서, 실험실에서 나와 집 근처에 있는 신경외과에 바로 갔더니, 역시나 얼굴 마비 증상이라고 확진이 되었다. 의사 말로는 이 구안와사가 걸릴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서 원인을 꼭 찝어서 말하기는 힘들지만, 보통 면역이 약해졌을 때 얼굴쪽 신경에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신경을 파괴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속했던 대학원 실험실이 진동에 민감한 실험장비들이어서 건물 지하 2층에 있었는데다가 당시 주로 사용하던 장비가 있던 방이 외풍이 굉장히 심해서 매우 추웠는데, 한두달동안 계속 밤샘 실험을 하면서 추운데서 자다가 걸린게 아닌가 싶었다. 의사 말로는 이 병은 신경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병이 의심되는 경우 최대한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하고 시기가 늦을수록 손상된 신경의 범위가 넓어져서 완치가 안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다행히 증상이 오자마자 치료를 받기 시작해서 중증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바이러스가 몸에서 사라지기 전까지는 증상이 한동안 심해질 것이라고 하였다. 정말로 약물치료와 신경물리치료 등을 받고 있는 와중에도 마비증상은 한동안 계속 심해졌는데, 얼굴 한쪽이 눈꺼풀을 제외하고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정도까지 발전하였다. 신경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근육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인데, 한번 죽은 신경은 재생이 되지 않지만, 점차 주변의 다른 신경들이 죽은 신경이 하던 역할을 대체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꽤 돌아온다고 하였다.

구안와사에 걸리고 1달정도 지났을 당시. 증상이 가장 심했을 때. 완벽한 좌우 대칭의 마네킹 얼굴과 너무 대조된다

 발병 후 1~2주정도까지는 증상이 계속 심해졌으나, 심화 속도가 느려지더니 1~2달정도 되자 아주 조금씩 회복되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얼굴의 마비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3~4달정도 걸렸고, 이 후에도 몇년동안은 얼굴의 좌우가 아주 약간 다른 상태가 지속되었다. 특히 한쪽 입꼬리가 약간 덜 올라가거나 처지는 후유증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 4~5년이 지나서야 후유증이 완전히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겨울에 발병 후 6개월지난 여름. 좌우 입꼬리의 모양이 다르다

 구안와사에 걸리게 되면 얼굴 표정이 우스워지고 애매해지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일상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좀 있다. 양치질을 할 때 입술 한쪽이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하다보니 물이 줄줄 흐르고, 음식을 먹을 때도 음식물이 입에서 떨어지기 쉬워서 훨씬 주의를 하면서 먹어야 했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얼굴로 웃기는 개그를 하게 되어서 주변 사람들이 웃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다.

구안와사 때문에 본의 아니게 맹구같은 얼굴을 하게 되어 연신 웃어대던 친구

 캐나다 살고 있는 베트남 친구가 한국에 왔던 적이 있는데, "안타까운데 너 얼굴을 보면 너무 웃겨"라고 하면서 연신 웃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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