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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경(北京, 베이징) - 이화원(颐和园, 이허위엔)

YK Ahn 2021. 5. 3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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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수도이자 황제의 도시인 베이징에는 북해공원(北海公园, 베이하이공위엔), 경산공원( 景山公园, 징샨공위엔) 등과 같이 그 공원 하나만으로도 왠만한 중국 성도(각 성의 수도)에서도 가장 좋은 공원보다도 좋은 공원들이 넘치는데, 이렇게 화려한 북경의 공원 중에서도 최고는 이화원(颐和园, 이허위엔)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화원은 청나라의 수도인 자금성에서 서북쪽에 약 13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화원의 70%이상으로 차지하고 있는 호수는, 예전에는 서호라고 불렸다가 청나라때 이곳 이화원을 대대적으로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이름인 곤명호(昆明湖, 쿤밍후)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청나라가 전성기를 이끌었던 황제 중 하나이자 청나라의 6대 황제인 건륭(乾隆)제 때 자신의 어머니인 효성헌황후의 환갑을 기념한 1750년부터 14년동안의 긴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때 호수의 이름과 더불어 언덕같은 작은 산인 옹산을 만수산(萬壽山, 완쇼우샨)으로 개명하였으며, 명나라 때 지어진 원정사(圓靜寺)을 없애고 그 자리에 대보은연수사(大報恩延壽寺, 따바오은옌쇼우스)를 지었다. 하지만 이때의 이름은 이화원이 아닌 청의원(淸漪園, 칭이위엔)이었으며, 이후 아편전쟁 때 북경을 점령하던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이곳의 보물들을 대부분 약탈하고, 건물들은 불태워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으나, 서태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1884년부터 11년간 다시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한 후 지금의 자신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하면서 이화원이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5년 뒤인 1900년에 서양 열강들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다가 1902년에 부분 보수하였다.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망하면서 황제의 사유재산으로 이전되었다가, 마지막 황제인 푸이가 2차 직봉전쟁 당시 자금성에서 쫓겨나면서 국가에 다시 반환되었다. 현재의 중국인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후 수차례의 대대적인 보수 작업 이후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으며, 1998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고 한다. 

 씨위엔(西苑, 서원) 역에서 내리니 근처에 음식점이 많이 있어 그 중 한군데서 점심을 먹은 후 이화원으로 향하였다. 

 성인 1명당 20위안인 이화원의 입장권. 계절따라 입장권 가격이 다르다. 

 이화원을 들어서자 인수전(仁壽殿, 른쇼우디엔)이 반겨준다. 건륭제와 서태후가 업무를 보던 곳인데, 특이하게 건물의 가운데 앞에 잘생긴 봉황이 서 있고 그 옆 끝에 용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봉황이나 용 모두 임금의 상징이었으나, 이 인수전에서의 봉황과 용의 자리바뀜은 황제와 서태후 간의 권력구도를 보여준 것이라고 한다. 

 덕화원(德和园, 더허위엔)의 입구. 이화원 입장권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아 입장권을 따로 다시 구매해야 한다. 이 덕화원의 예전에 경극을 관람하던 곳이라고 한다. 

 마치 후통(胡同, 호동)같은 길이다. 

 이 곤명호를 파낼 때 나왔던 흙을 쌓아 지금처럼 높아졌다는 만수산(萬壽山)에 올라가보기로 하였다. 

 소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곤명호와 남호도(南湖岛, 난후다오)

 만수산의 정상에 있는 지혜해(智慧海, 즈휘이하이). 건물의 벽에는 1008개의 불감과 불상들이 장식되어 있다. 이 앞에는 이화원에서 가장 유명한 불향각(佛香閣, 포샹가오)가 있는데, 출입문이 닫혀있어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만수산에서 내려와 호수쪽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호수 옆에는 호화스러운 산책길인 장랑(長廊, 창랑)이 있다. 길이가 700m가 넘는다고 한다. 

 곤명호. 이렇게 멋들어진 호수가 인공호수라니...

 청리관(聽鸝館, 팅리구안). 예전에는 연회를 열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 돌로 만든 배는 석방(石舫, 스팡)으로 아름다운 호수의 경치를 감상하는 곳이었다. 처음에 만들어진 석방은 아편전쟁때 파손되고 이후 서태후 시절에 새롭게 다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반벽교(半壁桥, 반비치아오). 다리의 밑은 벽돌로 이루어져서 그런지 이름이 특이하다. 

 반벽교는 이화원의 후산(后山)과 전산(前山)을 나누는 후호(后湖, 호우후)를 건너는 다리이다. 이 다리를 건너 후산쪽으로 가면 수상도시인 소주(苏州, 수저우)를 본따서 만든 유명한 소주하(苏州河, 수저우허)가 있다. 

 사진의 왼쪽은 전산(前山, 치엔샨)이며 오른쪽은 서제(西堤, 씨디)이다. 이 서제를 걸어가며 평화로운 이화원의 풍경을 구경하였다.

 저 멀리 이화원의 자랑인 불향각과 지혜해가 만수산 자락에 웅장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리가 생각보다 높다.

 저 멀리 남호도와 함께 십칠공교(十七孔橋, 스치콩치아오)가 보인다. 

 경명루(景明樓, 징밍로우)

 이화원에서 유일하게 아치형 다리라는 옥대교(玉帶橋, 유다이치아오).

 서제를 계속 걷다보니 이화원의 남쪽에 있는 출구로 나오게 되었다. 이날 돌아다녀 본 이화원은 사실 이화원 전체 중 1/3도 안될 듯 하다. 베이징은 한국보다 더 북쪽에 있어 안그래도 겨울이 추운데, 이렇게 뻥 뚫린 호수에서는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막아줄 것도 없다보니 3~4km 걸어서 생기는 피로보다 추워서 생기는 피로가 더 심한 듯 하다. 괜히 이화원이 여름 별장이 아니었다....베이징의 자랑인 이화원 구경은 이걸로 마치고, 이화원 근처에 있는 또다른 청나라의 궁전이자 정원인 원명원(圓明園, 위엔밍위엔)을 보러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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