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이야기/일상 생활 이야기

문자의 발명과 러시아 문자

YK Ahn 2021. 2. 27.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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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는 다양한 언어가 있지만 문자는 언어만큼 다양하지는 않다. 언어는 소리에 의한 정보전달이고 문자가 글자에 의한 정보전달이라는 것이 다른데, 지구의 역사에 있어서 인류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소리로 정보를 전달하는 동물들은 셀수도 없이 많으나 글자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인류가 유일하다고 보고 있다. 소리에 의한 정보 전달은 빠르고 직접적이지만 녹음기술이 없다면 정보 전달의 매개체에 의한 정보 손실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녹음 기술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도 꽤 최근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매우 고도화된 재료기술이 발달하지 않는 이상 소리에 의한, 즉 언어에 의존한 정보 전달은 그 한계가 명백하다. 그에 반해 문자는 시간이 지나도 그 의미가 심하게 변색되지 않으며 -문자의 의미라는 것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조금씩 변하기는 한다- 언어는 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매개체(동종의 동물이나 동족, 또한 같은 무리의 개체)가 필요한 반면 문자는 그 문자를 이해할 수 있는 개체라면 공간과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인류가 이제까지 알려진 지구상의 다른 동물들보다 더 진보할 수 있었던 것은 '문자의 발명' 때문인 것이다. 

 '문자의 발명'이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필연적이었는지 우연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인류에게 이런 빛나는 영예를 안겨준 문자의 발명은 대체적으로 한 번만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을 포함하여 중국의 갑골문자, 이집트의 쐐기문자, 수메르인의  상형문자 등 상식선에서 알고 있는 문자의 시초만 해도 벌써 몇개인데 어떻게 한번이라고 하는 것일까. 이는 '발명'이라는 것에 있다. 발명이라는 것은 가장 처음에 나오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고 나머지들은 그에 대한 응용이나 변형 등이기 때문이다. 

 

 즉 인류학에 있어서 문자의 발명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살던 수메르인들이 만든 쐐기문자가 한번 있었다고 본다고 한다. 이후의 문자들은 다른 발명들과 마찬가지로 이 발명이 전달된 것인데, 전달의 방법에는 보통 세가지가 있다. 하나는 발명된 문자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 두번째는 이를 응용하여 변형된 문자를 사용하는 것, 세번째는 문자 자체는 전달되지 않고 '문자를 사용한 정보 전달'이라는 개념만 전달되는 사례인 것이다. 

 이 중 이집트, 히브리어, 라틴어, 고대 로마어들은 처음에 만들어진 쐐기문자가 점점 발전하여 모양이 갖추어진 다음 그것을 그대로 사용한 첫번째 예이다. 두번째로 기존에 발명된 문자의 변형 문자가 사용된 것이 현재 유럽에서 사용하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의 언어들이라고 한다. 고대에는 지정학적인 위치가 정보의 전달에 있어서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요소였는데, 중동과 유럽 대륙이 평평한 평지라 문명의 왕래가 상대적으로 쉬웠던 반면, 높은 히말라야 산맥으로 가려진 아시아 지역은 문자가 직접 전달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문자라는 개념만 가져와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중국의 상형문자이다. (이에 반면 한글은 이후 문명이 이미 고도화되기 시작된 시점에 정치적/지정학적/역사적인 목적에 의해 공학적으로 만들어진 문자이다.) 그래서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사용 중인 중국의 한자는 서양의 문자와 그 형태와 발전된 방향이 매우 다른 것이다. 

 

 하지만 언어학자들이 문자의 발명과 발전에 대해서 얘기할 때 하는 러시아어는 이 세가지의 전달 루트에 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럽에 문자가 전달된 후 이 문자들의 다양한 파생들이 다시 생겨났을 때, 뒤늦게 다시 러시아에 전달이 되기 시작하는데, 다양한 문자들을 실은 마차가 러시아로 가는 얼음이 녹아 진흙탕이 된 길을 가다가 전복되어 문자들이 서로 뒤죽박죽 섞여서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우스개 소리이지만, 당시에 책을 읽을 때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러시아 여행을 가서 글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러시아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철도를 찾아가는 길. Terminal이라고 영어로 쓰여 있는데, 러시아어로도 Te...라고 써있기는 한데 뭔가 추측할 수 있을 듯 하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다. 

 러시아에 도착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온 거리. 가운데 보이는 간판이 은행인데, 뭔가 bank같으면서 다르다. 영어의 알파벳과 그리스어가 섞인 듯 한 문자에 bank가 아닌 BAHK라니...?

 러시아 박물관. R 대신 P, U 대신 Y, S 대신 C, I 대신 K, 뒤집어진 N과 모양이 약간 다른 H등 뭔가 뒤죽박죽된 영어 알파벳 같다. 게다가 Museum에는 숫자 3이 들어가 있다! 다양한 문자들 중에서 숫자가 들어가 있는 문자는 러시아어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러시아 블라디미르에 있는 버스터미널. Auto...뭔가라고 써있는 듯 하지만, 추론하기 애매하다. 

 수즈달의 관광지도인데, 물리학 전공서적 같은 느낌마저 든다. 물리학에서 상수로 많이 사용되는 그리스 문자와 좌우가 바뀐 문자들...

 러시아 문자를 보면 볼수록 왜 언어학자들이 러시아 문자를 전복된 마차에서 뒤죽박죽 섞여서 전달된 문자라고 농담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래의 러시아 알파벳을 보면 심증이 더욱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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